
20061020 / 도쿄 진보초 / 珈琲エリカ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카페 에리카 珈琲エリカ]는 바로 '珈琲時光' 를 의미하는 장소 그 자체였다. 영화를 극장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보면서 도쿄에 간다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카페 뤼미에르]의 여주인공 요코는 덴덴전차를 타고 집을 나와 JR 추오센을 갈아타고 오차노미즈역에 내린다. 그리고 진보초쪽으로 걸어와서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이 바로 이 [카페 에리카]
삐걱이는 나무 문을 밀고 들어서면 차분한 나무 장식의 카페 안에는 말쑥하게 나비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백발의 노신사가 조용히 커피를 내리고 있다. 임신중인 요코는 커피집에 왔지만 따뜻한 우유를 시킨다. 그리고는 어둑하게 가라앉은 가게의 가장 구석의 로얄석에 앉아 한줄기 빛이 내리쬐는 창을 등지고 앉아 글을 쓴다.
바로 이 장면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고 나를 카페 에리카로 데려 가는 바로 그 장면이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10월 나는 영화를 처음 본 후부터 2년이나 늦어서야 [카페 에리카]를 찾았다.
처음 진보초의 골목에서 [카페 에리카]를 찾아낸 그 기쁨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상당히 찾기 쉬운 곳에 있긴 했지만 그래도 영화속의 그곳에 내가 왔노라 하는 두근 거리는 마음을 진정 시킬 수 없을 정도였다. 몇장의 건물 외관 사진을 찍고 흥분된 마음으로 들어가려던 에리카의 나무 문에는 하얀 종이 한장이 붙어 있었다.
' 본 점포는 사정에 의해 당분간 휴업합니다. -카페 에리카-'

청천벽력같은 종이 한장. 무슨 일일까? 언제까지 닫는 다는 것일까? 설마 이대로 폐업인가? 이런 저런 무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행기간 동안 한 번 더 찾아와 봤지만 그대로였다. 사정을 알게된 건 한국으로 돌아와서 였다. 마스터가 지병으로 그만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내가 들르기 불과 몇 주 정도 전의 일이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선 '왜 나는 영화를 보고 바로 가기로 마음 먹었던 도쿄에 가지 않았던 것일까? 한 1년만 아니 몇개월만 더 일찍 [카페 에리카]를 찾지 않았던 것일까?' 이런 저런 후회가 마구 밀려왔다.

2007년 3월 나는 다시 한 번 도쿄여행을 했고 [카페 에리카]를 다시 찾아 갔다. 하지만 그 날과 똑같이 [카페 에리카]의 문앞엔 하얀 종이가 붙은채 굳게 닫혀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도쿄의 카페에 대한 무크지 한권을 우연히 구입했다. 그리곤 표지를 넘기자 마자 눈에 익은 카페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카페 에리카]였다. 왠지 눈물이 날것만 같은 장면이었다. 요코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노년의 신사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는 장면이었다. 뒷 창문에선 영화속과 똑같은 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책이 나온 건 2006년 11월로 취재를 했을 당시는 거의 마스터가 돌아가시기 불과 얼마 전이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건축가가 짓고 싶은대로 지었다는 목조로 된 찻집의 문을 열면 나비 넥타이의 신사가 자리를 안내해준다. 가게의 구석에는 스페셜 룸이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멋진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장식이 새겨진 기둥에 금속제의 램프등 여기는 이미 자신만의 공간이다.
[카페 에리카]는 개업한지 53년. 카운터에 자리잡은 마스터는 [우연히] 카페를 시작했다고 이야기 한다. 우연히 독일에서 돌아온 건축가와 만나서, 우연히 커피를 멋지게 내리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을 만나 여기까지 해왔다.
[이게 맛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카페 에리카]의 오리지널 블랜드는 넬 드립으로 내려 부드러운 첫 맛을 시작으로 쓴 맛과 신 맛이 슬그머니 뒤를 따른다 .
이 가게에는 음악이 없다. 마스터는 [잘 모르니까] 라고 웃는다. 느릿느릿하게 새겨지는 시간의 틈새로 카페의 손님들의 웅성거림과 거리의 소리가 흐르고 있다]
- 東京大人のカフェ時間 / 交通新聞社 / 2006년 11월 / 에서 발췌..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카페 에리카]에는 음악이 없었다는 점. 영화속의 [카페 에리카]역시 조용했던 기억이 난다. 커피잔이 부딛히는 소리 창밖에서 들리는 진보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내 취향도 아닌 소음 같은 음악 대신 사람이 살아 가는 소리를 들어가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에리카]는 그런 공간이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카페 에리카] 아니 잠시 우리 곁을 떠나 있는 [카페 에리카].
마스터가 떠난 반쪽의 에리카일지라도 언젠간 [카페 에리카]와 조우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수 있을까? 그 조용히 빛만 떠다니는 [카페 에리카] 속을 꼭 한 번 여행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Lomo LC-A / Agfa Vista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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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군 2007/04/13 04:41 Modify/Delete Reply Address
아... 전 이번에는 꼭 그 전철들이 교차하는 다리를 찾아가려구요. 지난번에 오차노미즈에 내리긴 해놓고 못 갔던 게 너무 아쉽..
박군 2007/04/13 04:47 Modify/Delete Address
오차노미즈 역에 내리면 바로 찾을 수 있어. (다리쪽으로 나오면 됨) 그때 10분정도 기다려서 열차 3대 교차하는 거 찍었는데 감개무량 하더만...
김씨 2007/05/08 10:32 Modify/Delete Reply Address
오호~ 독특한 냄새가 솔솔~ 그럼 끌리죵~
나 2007/07/31 09:57 Modify/Delete Reply Address
음~ 이 영화~ 일본 서울문화센터에서 DVD로 빌려서 봤는데..
너무 반해서.. 계속 카메라로 찍으며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 왜 저 까페에 가볼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그 영화보고 몇주뒤 일본에 갔었는데..
음 일본은 정말.... 1년정도 살다오고 싶은 나라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