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겹친 마감에 얼마간은 정신없이 일의 폭풍속에서 지냈기 때문에 그 좋아하는 만화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나날이었는데 갑자기 폭풍의 눈 속에 들어 앉은 마냥 스케쥴이 조용해졌다. 이것도 몇 일 못가겠지만 이때다 싶어 얼마전에 질러 놓은 책 중에 지브리의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의 책 한 권을 꺼내 홍대앞 미스터 도넛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읽어도 될 걸 굳이 들고 나가는 이유는 그저 집에선 집중이 안된다는 것. 집에서 여유로운 커피타임을~ 이라며 큰 돈주고 주문한 에스프레소 머신은 늘 이렇게 파리를 날리고 있다.

재밌게 읽은 가운데 인상적이 었던 것이 있어 인용해본다.
[ 그는 자료를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신용하지 않는다고 할까,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일을 목표로 한다면 여러가지 사물에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것들의 축적이야 말로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보원] 2002년 - ]

미야자키 하야오는 늘 사물을 깊게 관찰한다고 한다. 그의 머리속에 이렇게 쌓인 이미지들이 하울의 성이 되기도 하고 센과 치히로의 목욕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울의 성의 모습은 뭔가를 보고 그린게 아니라 이때까지의 그의 머리속에 들어있던 성이라는 이미지의 집대성인 것이다. 여행을 가거나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때도 그는 관찰하고 기억한다. 그것이 그의 그림의 원천이 되어 끊임 없이 샘솟아 나오는 모양이다.  스즈키 도시오와 함께 영국으로 여행을 했을 때 그들이 묵은 여관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본 적이 있다고 한다. 스즈키 도시오는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셔터를 눌러댔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사진 대신 자신의 눈으로 기록해 기억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때 본 그 여관의 건물은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등장했다고 한다. 포뇨의 언덕위의 집도 그렇고 모두 그의 기억속에서 재 생산된 현실속의 집들이다.

나는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게으른 탓에 일부러 자료를 찾거나 하지 않고 대략 머리속의 이미지로 그림을 그리는 편이지만 어느샌가 그것만으로 부족해진 탓인지 요즘은 부쩍 그림그리기 전에 자료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정확한 묘사가 필요한 그림도 있지만 자료에 의존하다 보면 이미지로 그릴 수 있는 것들까지 데이터에 의존하게 되더라. 그건 사진을 많이 찍게 된 시기와 묘하게 겹치는 부분도 있다. 여행을 가거나 길을 걸어도 멋진 풍경을 보면 카메라를 먼저 찾는다. 필름이나 플로피에 저장된 순간에 만족하며 그걸로 끝이다. 직접 내 눈으로 기억해서 그 감상을 곱씹는 시간은 어느샌가 사라졌다. 내 삶에 여유가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카메라 없이 여행을 해보고 싶다. 얼마나 관찰하고 감동할 수 있는지 내 스스로를 한 번 시험해 볼 기회를 갖고 싶다. 우선 환율이 좀 내려야겠지 -_-;










2009/03/12 23:59 2009/03/12 23:59
Posted by 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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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쭈니군 2009/03/13 01:49  Modify/Delete  Reply  Address

    에에~ 결론적으로는 역마살이 도지셨다는 이야기!!!!(근데 저도 요새 살짝 근질거리긴 합니다.... -.- 다행히 콘서트같은 거 안해서....)

    근데 저 이야기는 좀.... 부풀렸달까 특유의 '신화 만들기?'랄까... 저도 다 클때까정 만화가들은 대단해 아무것도 안 보고 저렇게 그려대다니. 하고 생각했지만..... 믿을 수 없어! 분명 지브리 작품의 설정집엔 현지의 모습과 그림을 비교한 페이지가 수도없이 있었건만!!!

    • 박군 2009/03/13 09:59  Modify/Delete  Address

      뭐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모르지만...일단 기억속에 있는걸로 그린다음에 자료랑 비교한다더군(키키랑 포뇨는 그런식)..하울의 성은 거의 새롭게 재창조해서 만들어 낸 거라고 하던데..본인은 몰라도 주변사람이 보기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지^^

      여튼..여행고프당....ㅠ_ㅠ

  3. 이유진 2009/04/02 13:52  Modify/Delete  Reply  Address

    안녕하세요~
    저 SBSi 다니던 이유진이예요~
    미지랑 연락하다가 생각나서 찾아와봤어요~
    정말 오랜만이죠? 기억하기 어려울정도로?ㅎㅎ
    아무튼 역시나 멋진 모습, 좋은 글과 그림, 행복한 일상 보기좋네요~ 잘보고 갑니다~
    자주 놀러올게요~~~

    • 박군 2009/04/02 23:15  Modify/Delete  Address

      와~~ 진짜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안그래도 미지랑 얼마전에 메신저로 이야기나눈 참이었는데.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업데이트가 부지런하진 않지만 자주 들러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북이 춤추다 / 타무라 테마리 / 미우

 


사실 살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띠지에 그려진 만화 컷을 보고 사야겠군..하고 결심했다.
거북이 사육 일기인가 했는데..예상을 뒤엎는 독특한 스타일의 만화.
진짜 웃기다. 이렇게 소리내어서 웃어 본 것이 얼마만인지..
만화를 좋아하지만 웃고 싶어서 보는 것도 아니고..슬픈만화를 봐도 우는 법 없고
웃긴 만화를 봐도 별로 표정 변화가 없는 내가 매화마다 크캬햐 하며 웃고 만 책이다.
개인적으로 4컷 만화를 좋아해서 그런 지 몰라도 임팩트 있는 웃음을 주기엔
4개로 나누어진 칸은 정말 효과적인 구조인 것 같다.

아프리카 육지 거북이가 등장한다. 주인공이다. 사육일기가 아닌 사육 당하는 거북이의 입장에서
낯선 땅 일본에서 일반인 기준을 벗어난 것 같은 주인과 일상의 관찰일기다.
가장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건 거북이 혼자, 나머지 주변 인물들은 엉뚱함과 괴팍함의
결정체들이다. 시니컬 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하나 하나에 격렬한 반응을 보여주는 거북이의
리액션에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책을 통해 작가의 거북 사랑이 느껴진다. 리얼한 거북의 묘사에 반해 만화의 내용은 정말 현실을 한없이
벗어난 것 같은 황당함과 엉뚱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거북이에 대한 묘사나 지식 전달 수준은
동물 도감수준으로 디테일하다. 그런 자신을 바탕으로 작가 자신의 스타일 대로 아는 만큼
거북이를 갖고 장난을 친다. 이것이 또 참을 수 없이 즐겁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하이쿠를 읊을 것 같은 거북이의 일상 에세이.
거북이에 대한 사랑과 촌철 살인의 웃음과 벚꽃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을 즐길 여유가 녹아 있는 만화다.
슬로우 라이프 스타일 멋지다 마사루 거북이편이라고 할까?

오래만에 소장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만화가 나와주어 반갑기그지없다.
게다가 1권이라는 게 기쁘다. 2권도 나온다는 거잖아? ^^

2009/03/08 23:12 2009/03/08 23:12
Posted by 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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