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의 마지막 날. 오늘은 그나마 제대로 영화를 보는 날이다. 11시 꿈의 은하 상영과 함께 영화의 아트디렉터였던 이소미 도시히로의 마스터 클래스가 있다. 쭈니군은 어제 심야를 보고 오늘은 오후 상영만 있었기에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오늘도 꽃놀이 예정이 있는 M양은 정읍으로 돌아가야 했고 나는 11시 상영이 영화의 거리의 메가박스에서 있었기 때문에 전북대 삼성 문화회관 앞에 서는 셔틀을 타기 위해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나를 전북대 앞에 내려주고 M양은 떠나고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아침으로 빵과 음료수를 사서 삼성문화회관까지 슬슬 걸어갔는데 있어야 할 셔틀 정류장이 거기에 없었다. 셔틀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서둘러 상영관쪽으로 가서 지프지기에게 물어보니 삼성문화회관 뒷쪽 편 왼쪽으로 가면 셔틀 정류장이 있을 거란다. 올해는 자리를 옮긴 모양이다. 1분을 남기고 부리나케 뛰어갔는데 거기에도 정류장이 없었다. 오른쪽 100미터 전방을 보니 막 출발해버린 셔틀의 뒷 꽁무니가 보였다. 그 지프지기가 오른쪽 왼쪽을 잘못 알려준 것이다. 1분만 빨랐어도...ㅠ_ㅠ 결국 포기하고 택시를 타고 시내로 이동. 상영시간엔 맞출 수 있었다.

마스터 클래스 관람객에게 나눠주는 팜플렛과 설문지를 받아 들고 상영장 안으로 들어가서 조금 있으니 이소미 도시히로씨 소개가 있고 곧 상영이 시작된다. '꿈의 은하'는 이시이 소고 감독의 영화로 이시이 감독이 연출하고 아사노가 출연한 영화중 유일하게 못봤던 영화였다. 2001년인가? 부산영화제때 [고조]를 들고 아사노타다노부와 함께 부산을 찾았을 때 무대인사로 만난 적이 있는데 둘이 같이 밴드 활동에 열심일 정도로 사이가 좋았었다. 그런 이유인지 아니면 감독의 취향에 맞는 배우인지 아마 두가지 다 이유일지 모르지만 이시이 소고 감독의 영화엔 아사노 출연작이 많다. 그래서 더욱 [꿈의 은하]를 보고 싶었고 11시부터 4시30분까지 라는 꽤나 긴 시간동안 열리는 마스터클래스일지라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97년 제작임에도 흑백화면에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오즈 야스지로 시대의 영화를 보는 듯 한 착각에 빠진다. 아사노 타다노부를 제외하면 정말 그시대에 만들었다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배우들의 분위기나 영화 전반적인 느낌이 상당히 옛스럽다. 지금으로 부터 20대 초반의 아사노의 얼굴 역시 대사가 별로 없는 역이지만 그의 존재감 하나로 악인일수도 선인일 수도 있는 이중적인 느낌의 남자 주인공을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화면 자체 느낌으로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스토리가 상당히 재밌고 긴장감 있게 연결되고 있다. 흑백영화 시대극에서 빠져 나온 듯한 여자 주인공의 신비스런 느낌의 얼굴과 다정한 미남자의 얼굴로 한 편으로는 살인자일지 모르는 위험한 남자 주인공 역을 자신의 이미지 하나로 제대로 표현해 낸 아사노 둘 만으로도 이 영화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영화가 끝나고 1시간의 점심 시간을 가진 후 프로덕션 디자이너(아트디렉터)인 이소미 도시히로의 마스터 클래스가 있을 예정.

1시간밖에 여유가 없었기에 멀리는 가지 못하고 근처의 콩나물 국밥집으로 향했다. 2003년에 들러서 먹은 기억이 있는 곳으로 내가 가본 전주콩나물 국밥집 중 유일하게 종지에 계란이 나오는 곳이었다 (다른데는 의외로 따로 안 나옴) 벽에는 그때 그려 놓은 낙서가 그대로 있었다. 왠지 반갑네. 그때보다는 맛이 많이 순해져서 좋았다. 해장하는 기분으로 한그릇 뚝딱.





이소미 도시히로씨와 통역 그리고 모더레이터 세명으로 마스터클래스가 시작되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꽤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소미 도시히로는 참여했던 영화 프로필을 쭉 훝어보니 아사노타다노부 출연작을 상당히 많이 맡았더라.(환상의 빛, 디스턴스, 하나, 꿈의 은하, 백치,헬프리스) 게다가 내가 정말 재밌게 봤던 최양일 감독의 '형무소 안에서'의 프로덕션디자이너도 맡았다. 그러고 보면 참 저예산 영화를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모를 친숙함이 느껴진다 (니가 왜?)

먼저 이소미 미술감독이 준비해 온 자료를 보는 시간이 있었다. 영화속의 장면 장면을 슬라이드 화면으로 보여주며 이 장면 저장면에서 소도구를 준비하며 있었던 에피소드 등을 이야기 해주었다. 초저예산 영화로 우리돈으로 2000만원도 안되는 금액으로 모든 소도구및 연출 도구를 준비해야 했던 악조건 속에서 영화속에서는 번듯하게 등장하는 씬 마다 어떤 식으로 그럴듯 하게 포장을 해서 준비했는지 하는 나름의 저예산 영화 만들기 노하우를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흑백이라서 그런지 그런 어설픈 준비에도 영화는 전혀 무리없이 제대로 완성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소미 도시히로씨의 발표가 있고 이후 Q&A까지 이어지는 꽤 긴 시간동안 마스터 클래스가 열리고 4시 40분 경에 정리가 되었다. (마스터 클래스 정리는 나중에 따로..)

11시 부터 징하게 오랫동안 마스터 클래스를 듣고 바로 4시 50분 상영의 '철콘근크리트'를 보러 다른 상영장으로 이동했다. 저번 오사카 여행때 보긴 했지만 그당시 열악한 사운드에 상당히 피곤해 하면서 본 기억이 있고 꽤 흡족하게 본 영화라 다시 한 번 제대로 보고 싶었다. 역시나 만족. 모두들 아오이 유의 목소리 연기를 칭찬하는 분위기.

4시 영화가 끝나자 오늘의 영화는 심야만 남겨두고 다 본 셈이다. 같이 '철콘근크리트'를 본 쭈니군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시내쪽을 돌다가 M양이 추천했던 낙지불고기 집으로 향했다.

낙지불고기 2인분을 시켰는데 정말 안먹으면 후회할 정도로 맛있었다. 낙지가 어찌나 싱싱하고 탱탱한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집 오징어튀김이 예술이라는데 (생오징어를 튀긴 오징어 링) 그건 몰라서 못먹었고...낙지 불고기에 밥을 볶아 먹는데 이게 완전 예술이었다. 감탄을 연발하면서 배불리 먹었다. 식후에는 메가박스 근처의 커피숍에서 라테로 입가심.

- 가열 전



- 가열 후

쭈니군은 오늘의 일정이 다 끝난 후여서 셔틀을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하고 나는 그 길로 숙소인 M양의 집으로 돌아갔다. 심야 상영까지 시간이 조금 있어서 좀 자둘까 했는데 결국 일기 쓰느라 자지도 못하고....12시 상영시간에 맞춰 삼성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오시이 마모루의 밤으로 애니메이션 2편과 실사영화 1편을 상영한다. 첫 영화는 우루세이야츠라 2 (아름다운 몽상가)로 꽤 재밌었다. 매일 문화제 전날이라는 일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이상함을 느낀 주인공들이 사실을 찾아 나서고 알고보니 그것은 라무의 꿈속이었다는 내용. 관객들의 반응도 좋아서 지루함을 전혀 못느끼고 빠져들어 볼 수 있었다.

20분 쉬는 시간에는 심야 영화의 꽃인 야식거리가 등장. 오늘 첫번째 야식은 후루츠통조림과 딸기우유. 후루츠믹스와 황도 두가지가 있었는데 나는 후루츠믹스를 받았다. 옆사람들이 황도를 먹고 있는 걸 보고 앗 나도 저걸 받을 껄 하며 잠시 부러워 함. 그리고 곧 두번째 영화가 시작되었다.

원래는 '다치구이시 열전'이었는데 바뀌어서 '토킹헤드'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마감 기한이 촉박한 애니메이션 완성 전문 감독이 어떤 작품에 새롭게 투입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었다. 시놉만 봐선 재밌겠네...싶었는데..이건 완전히 연극처럼 연출된 실사 영화로 모든 장면이 무대에서 이루어진다. 내용도 황당한데다가 과장된 연기와 연극적으로 묘사된 대사 및 무대연출, 나름 의도하고 만든 정성은 느껴지지만 좀 아니라는 느낌. 이 감독은 도대체 왜 실사영화에 미련을 못버리는가 의구심이 들정도로 지루하고 내 취향을 벗어나는 영화여서 보다 포기하고 잤다.

두번째 휴식시간에 나온 야식은 바나나와 녹차. 오랜만에 보는 과일이라 반갑게 먹었다. 새벽에 먹는 바나나도 꽤 괜찮네. 그리고 곧 마지막 애니메이션 '마로코'가 시작되었다.

마로코를 보고 딱 느꼈다. 오시이 감독은 연극에 빠졌구나 하고. 이 애니메이션은 묘하게도 연극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화면도 거의 무대처럼 한 막에 한장소 밖에 나오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연극처럼 왼쪽이나 오른쪽에서 등장해서 화면 가운데에서 이야기를 끌어 간 다음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별로 화목하진 않지만 그저 그런 보통의 평범한 가정에 마로코 라고 하는 이름의 미래에서 왔다는 주인공 소년(청년?)의 손녀라고 주장하는 소녀가 등장하면서 이 가족은 슬슬 붕괴의 위기를 맞는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녀의 주장을 어느새 가족들은 믿게 되고 이 한명때문에 가족은 모두 뿔뿔히 흩허지고 파탄에 이르른다. 결과는 새드 엔딩. 황당할 정도의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난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가족이란 이런 식으로 쉽게 깨질 수도 있는 조합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연극이라는 요소를 도입해서 그것도 묘하게 웃음을 줘 가면서 이끌어 가는 감독의 재량에 또 한번 감복하게 된다. '토킹헤드'에서의 연극적 구성은 이것과는 달리 실망스러웠으나 애니메이션 쪽은 또 다른 맛을 준다. 역시 이감독은 실사보다는 애니메이션이 제맛인듯. 개인적으로는 포장마차 국수집 장면이 가장 맘에 든다.

2번째 영화를 제외하면 나름 멀쩡한 상태로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니 5시. 애니메이션이 두편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일찍 끝나버렸다. 8시 기차를 예매했기때문에 조금 일찍 떠나는 차편이 있을까 해서 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첫 기차가 8시. 결국 표를 환불하고 시외버스터미날에서 출발하는 6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오랜만에 타보는 버스. 시트에 몸을 맡기고 아쉬운 마음으로 전주터미날을 떠난다. 내년에 또 보자구...

영화제 일기 끝.






 
2007/05/10 18:30 2007/05/10 18:30
Posted by 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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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쭈니군 2007/05/11 19:13  Modify/Delete  Reply  Address

    우루세이 야츠라를 본 '원로(--)' 애니메이션 팬들은 '다크시티'의 원류가 여기에 있었다고도 하지요. ^^..
    오시이 마모루의 화법은 역시 애니메이션에 더 맞는다는 느낌이에요. 본인은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거 같지만 -_-... 사실 애니메이션도 그저 하나의 도구로 본다고 보여져서 전 별로 안 좋아함.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했을 때 자신의 미학이 더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 +

  3. 케이 2007/05/16 22:37  Modify/Delete  Reply  Address

    덕분에 다녀오지 않았음에도 마치 갔다온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년엔 꼭 가보고 싶네요.